삼성은 보조금 발표 3개월 후 아직 지급 없어
인텔·마이크론 등 미국 기업 몰아주기 가능성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삼성전자의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 [AFP·삼성오스틴 페이스북] |
[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미국에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공장을 짓기로 한 반도체 기업들이 ‘트럼프 리스크’에 직면했다.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후보로 나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정부가 지급하는 반도체 보조금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치면서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성전자가 텍사스 테일러시에 400억달러를 투자해 최첨단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두 개를 짓는 대가로 지난 4월 64억달러의 보조금을 약속받았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지금 트럼프 전 대통령의 돌출 발언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반도체 보조금이 미국 의회를 통과한 법안인 만큼 뒤집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보조금 지급을 믿고 이미 현지 투자를 결정한 기업들로선 불확실성에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연초부터 트럼프 전 대통령 재집권 시 미국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이 조정될 수 있다는 전망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우려가 커진 것이다. 대신 인텔과 마이크론 등 자국 기업 지원을 우선시하는 ‘아메리카 퍼스트’ 기조가 더욱 강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반도체 산업의 거의 100%를 (대만이) 가져갔다”면서 “(미국은) 보험회사와 다를 바 없다. 대만은 미국에 방위비를 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TSMC가 미국 애리조나주에 짓고 있는 반도체 공장. [TSMC 제공] |
보조금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그는 “지금 우리는 대만이 우리나라에 새로운 반도체 공장을 짓도록 수십억달러를 주고 있다”며 “이제 그들은 그것도 나중에 다시 대만으로 가져가려 할 것”이라고 했다.
대만을 겨냥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은 곧 대만을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 TSMC를 향한 직격탄으로 해석되면서 주식시장에서 주가 하락으로 이어졌다. TSMC 외에도 대만 글로벌웨이퍼스가 미국에 웨이퍼 생산시설 두 개를 짓는 대가로 지난 17일 4억달러의 보조금을 약속받은 상태다.
대만 매체 이코노믹데일리는 류다녠 중화경제연구원 지역개발연구센터 소장을 인용해 “대만의 반도체 제조는 자체 R&D 성과에 의존하기 때문에 대만이 미국의 반도체 사업을 빼앗아간다는 생각은 선입견”이라며 “대만 산업의 발전을 고려하지 않고 결과에만 초점을 맞춘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은 불공정하다”고 지적했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3월 20일 미국 애리조나주 챈들러에 위치한 인텔 오코틸로 캠퍼스에서 전날 확정된 미국 상무부의 반도체 보조금 지급 소식을 발표하고 있다. [인텔 홈페이지] |
대만처럼 미국 투자를 결정하고 보조금을 받기로 한 삼성전자나 보조금 지급 절차를 밟고 있는 SK하이닉스에게도 남의 일은 아니다. 앞서 SK하이닉스는 올 4월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38억7000만 달러(약 5조2000억원)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정부에 반도체 보조금 신청서도 제출하고 기다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인식을 두고 미국 투자기업들이 현지에서 인재양성과 일자리 창출 등에 기여하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아가 트럼프 정부가 들어설 경우 삼성, SK하이닉스와 경쟁하는 인텔, 마이크론 등 미국 기업에 대한 지원만 더욱 노골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미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에 보조금과 세금 혜택을 지원하는 이른바 ‘칩스법(Chips Act)’이 지난해 8월 통과된 이후 지금까지 보조금 지급이 확정된 기업은 13곳이다. 이 중 보조금 액수가 가장 많은 기업은 인텔(85억달러)이다. 마이크론은 61억달러를 받기로 했다. 두 회사는 각각 1000억달러, 1250억달러 투자 계획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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