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관련한 국제 규범을 마련하는 ‘AI 서울 정상회의’가 안전 ·혁신 ·포용이란 틀을 담은 ‘서울 선언’을 채택히고 막을 내렸다. 영미권 중심으로 진행돼온 AI시대 새로운 디지털 질서를 세우는 작업에 우리가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은 의미가 적잖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AI기술은 놀라움을 안겨주고 있지만 불안감이 큰 것도 사실이다. 각국은 기술 혁신을 뒷받침하면서 적용 규범 마련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새로운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이번 정상회의는 지난해 11월 영국 회의에서 다뤘던 ‘안전’에 ‘혁신’과 ‘포용’을 더해 ‘AI 거버넌스 3원칙’을 세웠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새로운 기술을 겁내고 막기보다 기술 혁신을 통해 지구촌 난제를 해결하고 인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책임 있는 자세를 갖자는 데 뜻을 모은 것이다. 글로벌 기업들도 호응했다. AI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구글·오픈AI·삼성 등 글로벌 기업들은 AI의 위험 기준치를 설정해 공공안전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면 스스로 서비스를 중단하겠다는 ‘AI 안전 서약’에 합의했다. 기업들이 AI 개발에 대한 안전 약속에 합의한 건 처음으로 의미가 크다.
마침 유럽연합(EU)도 21일 포괄적 성격의 인공지능(AI) 규제법을 최종 승인했다. AI 활용 위험도를 네 단계로 분류해 차등 규제하는 게 골자다. 가령 의료 교육 선거 자율주행 등에 사용되는 AI는 반드시 사람이 감독하도록 하고 인종, 종교, 성적 취향과 같은 범주는 생체인식 데이터 사용을 원천 금지하는 식이다. 이를 위반하면 글로벌 매출액의 7%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법안 발의 후 3년 숙의 끝에 나온 것으로 기술 발전과 혁신을 촉진할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각국이 앞다퉈 기술개발과 함께 적용 규범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정작 우리는 조용하다. 지난해 초 ‘AI 기본법’이 국회 관련 법안 소위원회를 통과한 이후 21대 국회가 끝나가는 데도 논의가 멈춰선 상태다. AI진흥과 규제를 두고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AI는 반도체처럼 국가 대항전이 된 지 오래다. 미국이 인텔에 100 억 달러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각국은 AI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반면 한국의 투자 규모는 초라하다. 스탠포드대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신규 투자를 받은 한국의 AI기업 숫자는 44개로 세계 8위다. 미국 897개, 중국 122개 영국 104개에 크게 떨어진다. 인재 유출도 심각하다. AI진흥과 규제를 따로 떼 놓고 볼 게 아니다. 좋은 규범이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유념해 관련법 제정에 속도를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