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醫)·정(政) 갈등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2025년도 대입 일정상 의대 증원 배분을 더 늦출 수 없는 정부가 20일 예고했던 2000명 증원 대학별 배정을 확정하면서다.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과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 뒤이은 의대교수들의 집단사직 예고에도 불구하고 2000명 증원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의대 교수들은 사직서 제출 시한을 오는 25일로 잡고 집단행동을 강행할 태세고,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이날 시작한 차기회장 선거가 끝나면 집단 휴원이나 주말·휴일 단축 진료 같은 실력행사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입장도 단호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타협할 수 없는 문제’라고 선을 그었고 한덕수 국무총리는 대국민담화에서 “27년만의 2000명 증원은 의사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최소한의 인원”이라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강대강 대치의 장기화에 따른 피해는 오롯이 국민과 환자 몫으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의·정은 이번 사태의 출구 전략을 빨리 찾아야 할 것이다.
정부는 올해 입시부터 늘어나는 입학 정원 2000명을 비수도권에 82%(1639명), 인천·경기에 18%(361명) 배정하기로 했다. 서울지역 증원분은 없었다. 현재 49~142명인 경북대 등 지방 국립대 7곳 정원이 200명으로 증가해 서울대(135명)보다 커진다. 정부안이 이대로 유지되면 이른바 ‘인 서울’ 의대 정원이 전체 의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7%에서 16.3%로 대폭 축소된다. 비수도권 의대 집중 배정, 소규모 의대 교육 역량 강화, 지역·필수 의료 지원과 각 대학 수요·교육 역량 등 3대 요소를 반영한 결과다. 지역 거점 병원을 서울 빅5(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 수준으로 높여 ‘응급실 뺑뺑이’, ‘수도권 원정 치료’ 같은 환자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구상이다. 지역의료 기반 확대와 공공성 강화, 지역 완결성 의료체계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불가피하고 바람직한 방향이다.
지역의료를 살리고, 필수의료 개선을 위한 의료개혁의 출발점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의사수 확충이라는 데 대다수 국민이 동의하고 있다. 의사단체는 의약분업 등 과거 사례를 들어 정부는 의사를 결코 이길수 없다고 하지만 의사 직역 이기주의에 피로감이 극도로 높아진 국민은 이번만은 반드시 지역·필수의료 개혁의 성과를 요구하고 있다. 공공선과 사익으로 짜진 여론 지형에서 정부를 이기기 어려운 현실을 의사 사회는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필수의료 보상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의료 교육의 질 담보 등 실질적 부문에서 의사단체가 의료개혁을 주도해 실리를 확보하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고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