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관 탄핵소추안 차단 위한 與 전략적 판단
결국 尹 거부권 정국, 이슈 선점 밀린 野 ‘국면 전환’
국회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 개정안)과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처리를 두고 여야가 정면 충돌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는 여야의 극단적인 대치로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이상섭 기자] |
[헤럴드경제=이승환·김진·양근혁 기자] 단 17일 만에 여야의 ‘신사 협정’이 깨졌다. 9일 국회 본회의에서 과반의석을 지닌 더불어민주당이 노란봉투법과 방송 3법을 강행처리 했다. 22대 총선을 5개월 남겨둔 상황에서 ‘이슈 선점’에 밀리고 있는 거대 야당이 국회의 수적 우세를 앞세워 ‘국면 전환’에 나서는 모양새다. 정부여당이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법안을 강행처리해 대통령의 반복적인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유도하는 정치적 노림수라는 해석까지 나온다. 내년 총선을 ‘정권 심판론’이라는 프레임으로 굳히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국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의 2·3조를 개정하는 ‘노란봉투법’과 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을 개정하는 ‘방송 3법’을 통과시켰다. 4개 법안 모두 국민의힘 의원들이 표결을 거부한 상태에서 사실상 민주당 단독으로 처리했다.
노랑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기업 책임을 강화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회사 측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다. 방송3법의 경우 KBS·EBS 이사회와 MBC 관리·감독 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회를 확대하는 등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당초 국민의힘은 4개 법안의 처리를 차단하기 위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계획했다. 약 60명 규모로 필리버스터 참가 의원을 구성해 순번을 정한 상태였지만, 본회의가 열린 직후 필리버스터를 전격 철회했다.
이에 4개 법안은 본회의에 상정된 후 필리버스터 없이 표결이 진행돼 국회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예정대로 진행했을 경우 4개 법안 처리를 위해 본회의가 최소 5일 연속 열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다. 4개 법안마다 본회의 표결을 거치는데 각각 24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실제 국회법상 필리버스터는 신청 후 최소 24시간을 보장한다. 국회법상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100명)이 서명해 국회의장에게 '무제한토론 종결 동의서'를 제출하고, 종결 동의서가 제출된 때로부터 24시간이 지난 후 표결에서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179명)이 찬성하면 강제로 끝낼 수 있다.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 방침을 급히 바꾼 배경에는 민주당이 이날 본회의에 보고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과 검사 2명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 표결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전략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필리버스터를 진행할 경우 본회의가 지속돼 탄핵소추안의 표결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회의가 열리지 않을 경우 탄핵소추안의 자동 폐기된다. 현행법 상 국회 탄핵소추안은 본회의 보고된 뒤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표결해야 한다. 앞서 여야가 합의한 다음 본회의 개최일은 23일이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 도중 기자들과 만나 “우리 당은 필리버스터를 하지 않기로 했다”며 “필리버스터라는 소수당의 반대토론 기회마저도 국무위원 탄핵에 활용하겠다는 정말 악의적이고 정치적인 의도를 묵과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4가지 악법에 대해 국민께 소상히 알리고 호소 드리고 싶었지만, 방송통신위원장을 탄핵해 국가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 기능을 장시간 무력화시키겠다는 나쁜 정치적 의도를 막기 위해서는 필리버스터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국민들께서 이해해주시고 국민들께서 응원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정부여당이 강력히 반대해온 4개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다음 수순은 ‘대통령 거부권’ 정국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은 노란봉투법에 강력히 반발하고 경영계와 함께 대윤석열 대통령에게 4개 법원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예정이다.
민주당의 일방적인 법안처리 놓고 내년 총선을 고려한 ‘국면전환 카드’라는 관측이 나온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이후 국민의힘이 ‘메가시티’와 ‘공매도 금지’ 등 정책 이슈를 선점는 상황을 ‘대통령 거부권’ 이슈로 흔들겠다는 전략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는 “최근 국민의힘이 혁신 주도권을 잡는 양상이라서 민주당은 쟁점 법안을 밀어붙여서 정국 주도권을 자신들 것으로 바꾸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여당이 반대하는 법이니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될 것이고, 거부권 남용이라는 정치적 부담을 (여권에)안기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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