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에는 문재인 정부 인사들 ‘사의재’ 창립
‘책방지기’ 된다…與 “잊혀지지 않으려 안간힘”
金 여사 ‘광폭행보’…작년 말부터 공개활동↑
野 “누가 대통령인가” 특검TF 가동 공세 높여
1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포럼 사의재 창립기자회견'에서 정세균 전 총리, 박능후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참석한 문재인 정부 인사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파이팅하고 있다. 포럼 ‘사의재’는 대부분 문재인 정부 인사들이 참가한다. 정치권에선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구심체’가 사의재가 될 것이라 관측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퇴임 후 ‘잊혀진 삶’을 살겠다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은 여전히 건재하다. ‘조용한 내조’를 하겠다고 선언했던 김건희 여사도 최근 광폭행보를 펼치고 있다.
현실정치 ‘뒷편’에 있겠다던 이들이 존재감을 발휘할 때마다 정치권도 연일 공방으로 술렁이는 모습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한 검찰 수사가 거세지고, 이에 반발한 야당의 대정부 공세 맞불 수위도 높아지는 등 정치권 대치 상황이 격화될수록, 문 전 대통령과 김 여사의 ‘일거수 일투족’이 더욱 주목받고 다시 더 큰 공방으로 재생산되는 모양새다.
‘소문난 애서가’로 알려진 문 전 대통령은 이르면 다음달 자신이 머무는 경남 양산 평산마을에 책방을 열 계획이다. 문 대통령은 퇴임 후 그동안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활발히 책 추천을 해 왔다. 책방을 운영하면서 책 추천에서 나아가 시민들과 직접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어 정치권 이목이 집중됐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달 한겨레신문과 한길사가 공동기획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미 여러 지역에서 서점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며 “제가 사는 평산마을에도 작은 책방을 열어 여러 프로그램을 펼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마을 주택 한 채를 내부만 리모델링해 오픈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덧붙이며 “책방 이름은 ‘평산마을책방’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방지기’ 역할을 하겠다고도 밝혔다. ‘저자와 독자가 만나 대화하는 책방, 책 읽는 친구들이 방문하고 토론하는 책방’ 구상을 위해 직접 책방 일을 하며 책 추천과 독서를 함께 하겠다는 설명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 내외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2일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문 전 대통령 사저에서 단체 사진 촬영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공동취재] |
문 전 대통령은 재임 중에도, 퇴임 후에도 책 추천으로 일명 ‘문프셀러(프레지던트 문재인의 베스트셀러)’ 돌풍을 일으켜 왔다. 문 전 대통령이 SNS를 통해 추천한 ‘아버지의 해방일지’나 ‘짱개주의의 탄생’ 등 서적은 판매량이 크게 상승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당시 추천한 책이 잇따라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문 전 대통령도 “출판계에 도움이 돼 기쁘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퇴임 후 문 대통령의 존재감은 ‘책’ 뿐 아니라 최근 정치지형과 관련된 직접 발언으로도 부각돼 왔다. 문 대통령은 새해 메시지에서 “유난히 추운 겨울이다. 치유되지 않은 이태원 참사의 아픔과 책임지지 않고 보듬어 주지 못하는 못난 모습들이 마음을 춥게 한다”며 ‘이태원 참사’ 이후 정부·여당 대응을 에둘러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이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평산마을을 찾아 예방한 자리에서도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공감대를 이뤘다고 알려지며 정부 견제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문 전 대통령은 또 “민생경제가 참 어려운데, 이 대표를 중심으로 민주당이 이를 해결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해 주면 좋겠다”고 해 당내 결속을 당부하기도 했다.
문 전 대통령의 이같은 공개 행보에 대한 정치권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여권에서는 문 대통령이 “잊히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맹공을 폈다.
김종혁 국민의힘 비대위원은 지난 16일 한 라디오에서 문 대통령 책방 개소 소식에 “전직 대통령도 개인이니까 어떤 선택을 하든지 그걸 가지고서 왈가왈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면서도 “본인이 (퇴임 때부터) 잊힌 삶을 살고 싶다고 계속 얘기를 했는데 퇴임 이후의 삶은 잊혀진 삶이 아니라 잊히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삶이 아닌가 뭐 그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달력도 만들어 판매까지 하고 상왕정치도 아닌데 사저에 여러 사람이 내려갔다”며 “건강한 전직 대통령 문화를 정립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이게 과연 옳을까, 본인이 퇴임할 때 했던 말과 부합되게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강조했다.
반면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이같은 일각의 비판에 대해 18일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계셔야 하는 건가? 어떤 정치적 의도나 목적을 드러내지 않는 한 보통 사람들이 다 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퇴임한 대통령이 동네에 책방을 하는 게 정치적으로 어마어마한 일인가”라며 “물론 여쭤봐야겠습니다마는 SNS에 책을 추천하고 산에 갔던 얘기하는 것 등이 민주당을 결집하게 하는 행동인가”라고 반문했다.
김건희 여사가 11일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어묵을 시식하며 상인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 |
김건희 여사의 보폭도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김 여사는 대선 전 ‘학력 부풀리기’ 의혹이 불거지자 공식석상에 등장해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라도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으나 최근 기조를 180도 전환한 모습이다. ‘조용한 내조’가 아닌 ‘과감한 내조’가 시작됐다는 평가다.
김 여사는 지난 11일 단독 일정으로는 이례적으로 기자단을 대동하고 대구 서문시장을 찾았다. 시장 상인들을 격려하면서 설 명전에 필요한 식자재를 구매하고 현장에서 먹거리를 맛보기도 했다. 대통령실은 앞으로는 이러한 김 여사 활동이 더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김 여사 공개 행보는 지난해 12월에만 18건을 소화하면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이어 김 여사는 지난 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신년인사회에서도 여당 의원들에게 “대통령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등 정치인과의 스킨십을 넓혔다. 또 국민의힘 소속 여성 의원들에게 “여성의원님들만 따로 한 번 모시겠다”고 이들을 챙기기도 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김 여사가 단순 봉사활동을 넘어 ‘국정 내조’를 위한 본격적인 몸풀기에 나섰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윤 대통령의 이번 아랍에미리트(UAE) 국빈방문에 동행해서도 김 여사는 네 차례 단독 일정을 소화하며 숨가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김 여사는 지난 15일 셰이카 파티마 빈트 무바라크 알 케트비 여사의 초청으로 UAE 바다궁에서 만찬을 함께했고, 같은 날 UAE 알 와탄 대통령궁을 방문해 알 카아비 UAE 문화·청소년부 장관과 환담을 나누기도 했다.
또 17일에는 두바이 미래박물관을 방문해 ‘셰이카 라티파 빈트 모하메드 알 막툼’ 공주와 환담을 나눴고, 이에 앞서 현지의 우리나라 스마트팜 진출기업인 아그로테크(AgroTech) 사(社)를 방문했다.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5일(현지시간) 아부다비 파병중인 아크부대를 방문, 한 부사관 가족과 영상통화를 하고 있다. [연합] |
김 여사가 보폭을 넓히는 것에 대해 야권은 공세 수위를 높여가는 분위기다. 김남국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 대통령 내외가 UAE 아부다비에 파병 중인 아크부대를 방문해 한 부사관 가족과 영상통화를 하는 사진을 올리며 “누가 대통령인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도 한 방송에 출연해 “잘못하면 김 여사가 대통령 노릇한다는 비판이 쏟아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최근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등에 대한 특검 추진을 위해 당내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다. 이재명 대표를 향한 잇따른 검찰 조사에 대한 ‘맞불’ 차원에서 특검 재추진을 공식화하고 있다.
jin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