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기원·효능의 우수성도 결의문에 포함
국내 연구진 “중국 주장 근거인 ‘시경’, 논리적 허점 드러나”
‘김치 종주국’ 위상 높이려 정부기관·지자체·식품업체 협력
[헤럴드경제=육성연 기자] “한국이 김치 종주국이다(Korea is the country of origin of kimchi).”
우리나라가 아니다. 이는 미국 캘리포니아 의회에서 울려 퍼진 말이다.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해당 발언은 ‘김치 종주국’에 대한 중국의 주장과, 전 세계적으로 김치 인기가 높아진 시점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귀한’ 말이다. 그것도 전 세계에서 가장 ‘입김’이 센 미국의 말이라면 더욱 그렇다. 반가운 소식과 함께 중국이 김치 기원 주장의 근거로 내세운 ‘시경’ 또한 최근 국내 연구진의 분석으로 논리적 허점이 드러났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의회에서 해마다 11월 22일을 ‘김치의 날’로 지정해 공식 기념하는 결의안이 주 하원을 통과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제공] |
지난 23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의회에서는 한국을 ‘김치 종주국’으로 명시한 ‘김치의 날(11월 22일)’ 제정 결의안이 통과됐다. 미국에서 ‘김치의 날’을 제정한 것은 캘리포니아주가 처음이다. 이번 결의문은 ‘한국이 김치 종주국’이라는 사실을 명문화했을 뿐 아니라 ‘미국 내 김치의 수요·수출 증가’ ‘김치 역사’ ‘건강식품으로서의 우수성’에 대한 내용도 담았다. 지난 2013년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김장’, 김치가 프로바이오틱스의 우수한 공급원인 동시에 면역력 향상 효능을 가진다는 사실도 모두 담긴 것이다.
‘김치의 날’은 우리나라에서도 제정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법정기념일이다. 지난 2020년 2월 ‘김치산업 진흥법’ 제20조의 2가 신설됨에 따라 11월 22일로 정해졌다. 해당 날짜는 11월의 숫자 ‘1’처럼 김치 소재 하나하나가 모여 ‘22’가지 효능(22일)을 나타낸다는 의미가 있다. 또한 이때는 한국인이 김장을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김장은 겨울의 시작인 입동(11월 7~8일)부터 얼음이 얼고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소설(11월 22~23일) 전후를 적기로 여겨 왔다. 김치가 쉽게 시어지지 않으면서 채소가 얼기 직전인 시기에 김장을 했던 것이다.
미국 새크라멘토에서 열린 ‘캘리포니아 김치의 날 제정’ 기념식. [세계김치연구소 제공] |
이번 캘리포니아 의회에서 대표 발의한 최석호 캘리포니아주 하원 의원은 “중국이 김치의 기원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바로잡고 김치가 한국의 대표음식임을 미국에 알리는 내용이 결의안에 포함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중국 관영매체 환추스바오는 ‘김치는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올해 초 중국 유명 유튜버 리즈치는 김장을 하고 김치찌개를 끓이는 영상을 올리며 ‘중국 음식’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중국이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내놓은 것은 ‘시경’이다. 이는 중국 주나라 때부터 생활상을 담은 시가(詩歌) 300여편을 춘추시대에 공자(기원전 551∼479년)가 추려서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잘못된 근거라는 국내 연구가 최근 발표됐다. 세계김치연구소 박채린 박사는 ‘한국식생활문화학회지(2021)’에 실린 논문을 통해 국내외 김치 관련 문헌을 분석한 결과 “‘시경’에 언급된 ‘저(菹)’는 원시형 채소절임에 표현한 것이며, 김치의 직접적 기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즉 김치가 채소절임의 기원이란 근거로 제시한 ‘시경’은 보편적 채소 저장 방식인 ‘비발효 원시 절임 형태의 음식’을 기록한 것으로, “최초의 기록이 중국 문헌이라고 해서 중국이 모든 원시형 채소절임의 기원이라고 볼 수 없다”는 분석이다. 박 박사는 “채소의 장기 저장이 필요했던 문화권에서 채소절임 음식이 우리나라에서 ‘김치’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창의성을 발휘한 조상의 지혜 덕분”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박 박사는 “중국 주장이 논리적 허점과 잘못된 근거에 기반하고 있는데도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고 감정 대응만 앞세우는 우리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김치를 ‘한국 파오차이’라 부르며 김치 기원을 왜곡하고 있지만 파오차이가 단순한 ‘절임채소’를 뜻하는 반면, 김치는 ‘발효식품’이다. 김치는 g당 1만마리에 그쳤던 유산균 수가 발효 과정을 거치며 1억에서 10억마리까지 늘어난다. 30년 이상 김치 연구에 매달리며 자타 공인 ‘김치 박사’로 불리는 박건영 차의과학대 식품생명공학과 교수는 “김치는 우리 선조가 남겨준 유일의 채소 발효식품으로, 한국의 제1 전통식품”이라고 말했다. 이어 “파오차이는 중국의 식문화와 지역에 맞게 개발된 그들만의 음식이므로, 파오차이가 김치가 될 수는 없다”고 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김치 종주국’의 위상을 바로잡기 위해 지자체와 김치업체들도 힘을 모으고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김치생산자협회 설립이나 김치 원료 공급단지 조성 등 김치산업 육성에 뛰어들었으며, 농협 경제지주는 전국 김치공장을 통합하기로 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지원도 확대 중이다. aT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해 발효식품의 관심 증가 및 가정용 소비 증가에 따라 수출이 증가하고 있다”며 “우수 김치 선발 육성을 위해 농식품부와 공동으로 김치품평회, 로컬김치선발대회를 주최하고, 김치산업에 대한 종합 정보를 제공하고자 해마다 김치산업 실태조사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김치는 면역력에 좋은 식품으로 주목받으면서 사상 최고 수출 판매액을 갈아치우는 중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7월) 김치 수출액은 9930만달러(약 1158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17% 증가했다. 이러한 추세라면 올해 김치 수출액은 이미 역대 최고 수준을 보인 지난해 기록(1억4400만달러)을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한국산보다 저렴한 가격을 내세운 ‘중국산 김치’ 문제가 남아 있다. 중국산 김치는 세계 시장을 공략할 뿐 아니라 ‘김치 종주국’인 우리나라에도 많은 물량이 수입되고 있다. 중국산 ‘알몸 절임배추’ 파문이 일어나면서 수입량은 감소 추세이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수치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7월 김치 수입량은 1만6600t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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