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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한의 리썰웨펀] 朴대통령 또 다시 선보인 유체이탈화법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4일 대국민 사과에 나서 또 한 번 이른바 유체이탈화법을 선보였다.

유체이탈화법이란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건이나 이야기를 남 이야기하듯 말하는 화법을 말한다. 통상 주어가 없고 때에 따라서는 주어와 술어가 불일치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즉,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표현이다.

영혼이 마치 몸에서 분리된 것처럼 자기 이야기를 남 이야기처럼 한다는 게 유체이탈화법의 요체다. 이런 화법은 나중에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엉뚱한 자화자찬으로 일관하는 경우로까지 발전하기도 했다.

원래는 이명박 정부 당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팟캐스트방송 ‘나는 꼼수다’에서 언론인 김어준씨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화법을 비판하면서 사용한 용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이 정부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말했지만 곧 청와대 핵심 참모들과 측근들이 구속돼 체면을 구겼고, 지난 2012년 여름 국내에 심한 가뭄 현상이 온 와중에 브라질을 방문해 “4대강 사업으로 홍수와 가뭄 모두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있다”고 말해 농민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또한 당시 정부가 2012년 한일군사정보협정을 밀실 추진하다 국내 반발 여론에 떠밀려 무산되자 “국회와 국민들에게 협정 내용을 소상히 공개하고 설명해서 오해가 없도록 조치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유체이탈화법의 극치라는 평을 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청와대 춘추관 2층 기자회견장에서 두 번째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유체이탈화법’, 언론인 김어준씨가 MB 비판하며 처음 사용=이번 정부 들어 박근혜 대통령도 이런 유체이탈화법 대열에 가세했다.

특정 사안에 대해 정부의 잘못을 사과할 때 특히 이런 화법이 많이 나왔다. 사과하면서도 잘못을 정부 당국자들, 이해 당사자들, 국민들 등의 탓으로 돌리고 자신은 마치 아무 관련이 없는 듯이 말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지 닷새 후인 4월 21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세월호 선장과 선원 등을 강력 비난해 화제가 됐다.

당시 박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보면서 저뿐 아니라 국민들께서 경악과 분노로 가슴에 멍울이 지고 있습니다”라며 “먼저 무엇보다 선장과 일부 승무원들의 행위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용납될 수 없는 살인과도 같은 행태였습니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발언에 대해 세월호 사건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자리에 있는 사람이 오히려 피해자인듯, 관찰자인듯, 심판자인듯 변칙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한 당시 박 대통령의 화법은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마저 논란이 됐다.

2014년 4월 21일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박 대통령이 세월호 승무원들을 비난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박 대통령을 사실상 비판했다.

이 신문은 해당 기사에서 “대통령이 먼저 그런 발언을 할 경우 선장과 승무원들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겠느냐”, “대통령이 승무원들에게 살인죄를 선제적으로 선고한 것은 잘못이다. 지방선거를 두려워해서인가” 등의 전문가 발언을 인용했다.

당시 국내 언론들도 세월호 사태로 정부의 위기 대처 능력이 논란의 중심에 선 가운데 대통령이 오히려 가장 큰 책임을 시스템이 아니라 몇몇 개인에게 전가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며 대통령의 유체이탈화법을 지적했다.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이 사법부의 심판자 역할까지 대신하는 게 과연 정상적인 정치행위였느냐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0월 중순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며 정국이 되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불리하게 전개되자 지난달 25일 첫 번째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 이후에도 각종 의혹이 연쇄 폭로되면서 사태가 수습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2일 새 총리 인선안 기습 발표, 3일 총리 후보자의 총리직 수락 발표에 이어 4일 두 번째 대국민 사과에 전격 나서게 된다.

그러나 두 번째 대국민 사과 역시 유체이탈화법이 점철된 화법으로 분석된다. 쏟아진 모든 의혹들이 박 대통령 자신을 향하고 있는데 정작 박 대통령 자신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남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박 대통령, 두번째 사과에서도 유체이탈화법=박 대통령은 세월호 직후 청와대 비서관회의에서처럼 “무엇보다 저를 믿고 국정을 맡겨주신 국민 여러분께 돌이키기 힘든 마음의 상처를 드려서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 사태를 야기한 본인이 오히려 이 사태의 피해자인 듯한 인상을 주는 대목이다.

또한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될 일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최순실씨 등을 ‘특정 개인’으로 칭한 부분이 눈에 띈다. 대통령의 비호가 없었더라면 특정 개인이 막대한 이권을 챙기고 숱한 위법행위를 저지르기란 쉽지 않다. 대통령이 언급한 특정 개인의 범법행위의 몸통이 대통령인 상황에서 특정개인의 행위에 대해 오히려 ‘안타깝고 참담하다’며 자신이 피해자인듯한 유체이탈화법을 쓴 것이다.

유체이탈화법은 계속 나온다.

박 대통령은 또 “어제 최순실씨가 중대한 범죄혐의로 구속됐고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이 체포돼 조사를 받는 등 검찰 특별수사본부에서 철저하고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며 “앞으로 검찰은 어떠한 것에도 구애받지 말고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밝히고 이를 토대로 엄정한 사법처리가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최순실씨가 청와대 관련 업무에 비공식적 계통에서 개입하며 국정을 주도한 것은 모두 대통령과의 친분에 의한 것이었고, 안종범 전 수석 또한 대통령 지시를 받고 일하는 청와대 직원일 뿐이라는 점에서 최순실, 안종범은 대통령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러나 대통령은 마치 최씨와 안 전 수석이 자신과는 별개의 범법자인 듯 유체이탈화법을 이어갔다.

이어 대통령은 “더 큰 국정혼란과 공백 상태를 막기 위해 진상규명과 책임추궁은 검찰에 맡기고 정부는 본연의 기능을 하루속히 회복해야만 합니다”라며 “국민들께서 맡겨주신 책임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사회 각계의 원로님들과 종교지도자분들, 여야대표님들과 자주 소통하면서 국민 여러분과 국회의 요구를 더욱 무겁게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3일 “헌법상에 보장된 총리 권한 100%를 행사하겠다”는 것을 전제로 총리직을 수락한 김병준 총리 후보자에 대해서는 끝내 한 마디의 언급도 없었다. 이는 대통령이 새 총리 취임 후에도 2선으로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대통령이 원인이 되어 최순실 게이트가 생겨났고, 이로 인해 현재의 국정공백 사태가 야기됐지만, 모든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자신의 거취나 차기 총리의 권한에 대해 언급이 없었다는 점 또한 유체이탈화법의 연장인 것으로 보인다. 

soo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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