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연극ㆍ뮤지컬 갤러리(게시판)에 하나의 연극 후기글이 올라왔습니다. 작성자는 “지방이고 평일이고 소극장이지만 자신을 포함해 관객은 단 4명이었다”며 “출연배우만 8명인데 환하게 웃는 배우들의 모습을 보고 미안하고 눈물이 나서 혼났다”고 말했습니다.
극단 푸른달의 공연 모습(사진=푸른달 제공) |
하루가 지난 7일, 같은 갤러리에 해당 연극의 후기글이 또 올라왔습니다. 장문의 글은 “막공(마지막 공연)을 보고 왔다”며 연극의 전체 구성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물론, 서툰 솜씨의 그림까지 그려 극의 내용을 전달했는데요. 작성자는 글을 마치며 “정말 행복한 한 시간이었다”며 “언젠가 다시 무대에 오를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위 두 후기는 부산국제연극제에서 극단 푸른달이 공연한 ‘보물상자’라는 오브제마임극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연극과 뮤지컬에 대해 제대로 꽂힌 ‘연극덕후(오타쿠)’이 모인 이 갤러리의 이용자들이 올린 글이었는데요. 해당 글에는 연극을 사랑하는 덕후들이 모이며 “이런 보물같은 극들이 대우를 받아야 하는데 아쉽다”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디시인사이드의 연극뮤지컬 갤러리에 올라온 푸른달의 부산 공연 후기사진(사진=디시인사이드) |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몇 시간 후 극단 푸른달의 대표이자 연출가인 진신(박진신)이 갤러리에 글을 남기는데요. “안녕, 극단 푸른달 진신이야. 다들 고마워”라는 제목의 글은 자신들의 공연을 보고 후기를 남겨준 이들에 대한 감사의 말로 시작합니다.
그는 “공연이 끝나고 쫑파티를 하면서 다들 침울했는데 기획자가 알려준 후기글을 보고 왔다”며 “알려지지 않은 우리 공연을 선택하고, 진심으로 즐겨준 사람들에 대해 고맙고 또 고맙다”라는 감사의 인사를 남겼습니다.
그러면서 “나에게 희망을 줬으니 선물을 하겠다”며 연극에 대한 설명은 물론, 기획의도까지 세세하게 알렸습니다. 이어 그는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습니다. 박 씨는 “내 극은 연극인들도 관련자들도 일반 관객들도 보지 않는다”며 그 이유에 대해 조곤조곤하게 설명을 했습니다.
푸른달 박진신 대표의 감사글(사진=디시인사이드 캡쳐) |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연극계에 뛰어든 후 돈이나 유명세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고 튕겨나와 직접 만든 것이 푸른달 극단”이라며 “극단의 첫 이야기가 ‘보물상자’였고 티켓값으로 500원을 받았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는 돈보다는 보러 와주는 관객들이 고마웠다며 이후 자신의 개인 지출로 조금씩 버텨왔는데, 2년만에 1억원의 빚을 남겼다고 말하며 “축하해달라”는 자조섞인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가끔 운다”며 “배우들 밥 못사주는 것도 싫고, 좋은 작품 나왔는데 홍보 못하는 것도 싫고, 매번 초대 관객들만 극장 채우는 것도 싫다”며 글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들 덕분에 내가 있고 지금 여기까지 왔다며 감사의 인사를 남깁니다.
그는 이제 ‘손순’이라는 공연이 예정돼있는데, 이 공연이 푸른달 극장의 폐관작이 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더이상 불어나는 빚을 감당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푸른달 기적을 만들자는 갤러리 유저들의 글(사진=디시인사이드 캡쳐) |
하지만 그는 “마지막 공연도 열심히 할 것”이라며, “우린 관객이 없어도 공연을 한다. 왜나면 좋은 극을 한다는 믿음, 이 좋은 극을 안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웃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후기를 읽고 배우들 모두 마음으로 행복했다”며 “연뮤갤 고맙고 연덕들 고맙다”는 글로 장문의 감사 인사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납니다. 박 씨가 쓴 글이 1만8000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는 것은 물론, 마지막 공연이라고 밝힌 ‘손순’의 예매행렬이 시작된 것입니다. 단 하루만에 4회차의 공연 좌석이 모두 매진을 기록한 것 입니다. 아직 매진되지 않은 나머지 회차 역시 빠른 속도로 좌석이 마감될 것으로 보입니다.
기적의 힘은 ‘연덕’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공연 예매는 물론, 손순을 위한 프로그램북까지 자발적으로 만들겠다고 나섰습니다. 공연을 위한 프로그램북 한번 만들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다는 박 씨의 글에 울컥한 것이죠.
“디자인을 맡겠다, 텍스트를 꾸미는데 도움을 주겠다”는 사람들은 물론, 재능은 없지만 금전적으로라도 도움을 꼭 주고 싶다며 연덕들은 대동단결했습니다.
여기에 오는 11일 프레스콜까지 계획되며 일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8일 박 씨는 갤러리를 통해 감사의 글을 다시 남겼는데요. 그는 “극단 식구들 모두 어리둥절해있고, 너무 고마워서 행복한데 사실 우리가 받으면 안되는 마음 같아서 떨린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고맙다는 말 백번 천번 하고 싶은데 부족할까봐 입에서 나오지가 않아 미안하다”며 “그래도 주는 마음 감사하게 조심스레 받아보겠다”는 말과 함께 행복한 공연을 꼭 보여주겠다고 말했습니다.
푸른달의 윤단비 기획자는 HOOC와의 통화에서 “감사한 마음 이외에는 드릴말씀이 없다”며 “극단 관계자 모두 약간의 흥분과 함께 예정된 공연을 잘 준비해 보내주신 관심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좋은 공연을 보고싶다는 연극덕후들의 따뜻한 마음이 만든 ‘푸른달의 기적’. 반짝 관심이 아닌, 좋은 연극과 문화에 대한 지속적인 사랑으로 이어졌으면 합니다.
박진신 씨는 첫 글에서 “푸른달은 낮에 뜨는 달, 아무도 보지 않지만 늘 떠있는 달”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푸른달은 적어도 아무도 보지 않는 달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한국 연극계에서 자신의 자리를 오롯이지키며 늘 떠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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