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사람들은 먼저 약속을 깬 사람보다 나중에 깬 사람한테 더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정치는 곧 약속이고, 약속을 지키는 것이 곧 새정치라고 줄곧 외친 쪽이 안 대표였기에 세간의 잣대는 안 대표한테 더 엄격했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안 대표는 무공천 약속을 지키지 못해 사과하는 순간까지 박 대통령이 대선공약을 파기했다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 정치역사가 그리 길지 않아 완전 성숙 단계라 보기 힘들기 때문에 대통령이 모든 공약을 지키지 않아도 비교적 용인되고 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 점 때문에 약속만을 강조한 안 대표가 순진했다는 평가도 따릅니다.
그럼 우리보다 정치역사가 훨씬 긴 다른 나라에선 대통령이 공약을 잘 지키거나 아님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할까요. 정치제도가 잘 정립된 미국의 경우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미국의 팩트체킹 사이트인 폴리티팩트닷컴(www.politifact.com)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지킨 약속과 못 지킨 약속이 정리돼 있습니다. 이를 ‘오바미터(Obameter)’라고 부릅니다. 이 사이트에는 누구나 접속할 수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공약파기 사항을 기록한 폴리티팩트닷컴 사이트 캡처 |
오바미터에는 지킨 약속도 있지만 공약을 파기한 것도 수두룩합니다. 공약파기 사항을 보니 무려 115개에 달합니다. 여기에 비하면 새정치민주연합이 주로 지적하는 박 대통령 공약파기 사례인 기초공천폐지, 기초연금, 4대 중증질환 치료, 행복주택 등은 견줄 바가 못 됩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공약파기 분야도 ▷석유와 가스 세금 탈루업자 근절 ▷유주택자용 압류 방지 펀드 조성 ▷파산기업 임원 보너스 지급 금지 ▷제약사 복제약 제지 금지 ▷방과후 학교 지원금 2배 확충 등 다양합니다.
미국 외 다른 나라 대통령들도 약속을 못 지켜 비난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실업자수를 지난해말까지 줄이기로 했지만 되레 최대치를 기록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프랑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프랑스 실업자수는 33만3200명으로 집계 이래 최대 수치를 보였습니다. 실업률은 전달 대비 0.3%P, 전년 동기보다 5.7%P 올라갔습니다.
박 대통령, 오바마 대통령, 올랑드 대통령 모두 약속을 파기한 대통령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른 점은 지지율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역대 최저인 40% 전후의 지지율을 기록 중이고 올랑드 대통령도 20%에도 못 미치는 지지율로 ‘5공화국(1958년 샤를 드 골 집권 이후 헌정체제) 이래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이라는 오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반면 박 대통령은 60%를 넘나드는 지지율로 2년차 대통령 중 최고라는 평가입니다. 오죽하면 새정치민주연합이 대통령 지지율이 너무 높아 국민 경고가 안 먹힌다고 푸념할 정도입니다.
똑같이 약속을 안 지키고도 어떤 나라 대통령은 지지율이 바닥인데 유독 우리만 정반대인 상황인 셈이죠. 특정인을 두둔하거나 또다른 누군가를 옹호할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지난 한 주 한쪽으로만 쏠렸던 비난의 화살에 균형이 잡히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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