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제동을 걸 정도로 국회가 경제민주화 법안을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진보경제학자도 ‘즉흥 입법, 컨트롤타워 부재’를 들어 정치권의 입법경쟁을 비판했다. 정부나 정치권이 경제민주화의 명확한 개념과 지향점을 제시하지 못한 채 일각의 요구사항을 그때그때 입법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면서 이해관계자 사이 합의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정부 내에서 진짜 필요한 경제민주화 정책을 힘있게 끌고 갈 구심점이 없어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공정거래법 개정 입법화 취지에 대해선 공감하지만 공정거래법상 형사처벌 관련 규정을 동반하게끔 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볼 때 과잉입법이라 충분히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김 소장은 이어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별로 어떤 내용이 더 들어가야 하고 빠져야 하는지 논의가 부족한 모습”이라고 정치권의 중구난방식 입법경쟁을 비판했다.
김 소장은 “일례로 일감몰아주기를 근절하기 위해 형사처벌하겠다는 조항은 과잉규제일 수 있다”면서 “하지만 대기업의 등기이사에 한해 연봉을 공개토록 한 것은 책임경영 등 선진국의 사례를 볼 때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정치권에 우려의 목소리를 전한 가운데, 학계도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를 원천 차단하고 형사처벌까지 하겠다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개별 사안에 따라 즉흥적으로 입법이 추진되면서 소모적인 이해당사자 간 다툼이 발생, 경제민주화에 대한 본질적 논의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이필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 상황을 “불공정 거래와 관련해 징벌적 조치를 강화하겠다는 움직임 자체는 이미 예전부터 논의돼온 사항이건만 정치권이나 재계는 당장 감정적 대응으로 맞붙는 양상”이라며 “경제민주화라는 전체적인 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양보를 강요하고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모습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또 “대기업의 순환출자 문제 등 더 굵직한 사안에 대한 합의가 우선돼야 함에도 상대적으로 지엽적 과제에 대한 해법이 뒤죽박죽으로 나오면서 혼란을 주고 있다”며 “경제민주화라는 하나의 큰 청사진이 먼저 그려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경제민주화의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백웅기 상명대 교수는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서부터 일관된 모습으로 소신있게 경제민주화 정책을 밀고 나가지 못한 측면이 있다”면서 청와대의 분명한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백 교수는 이어 “경제가 어렵다보니 추경이나 경기부양책에 더 초점을 맞추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추진할 경제민주화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분명하게 입장을 표명하는 게 시장의 혼란을 막을 수 있다는 조언이다.
백웅기 기자/kgungi@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