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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시대 귀여운 중년 김정운이 뜨는 이유?
▶김정운은 교수다

김정운(49)은 교수다. 명지대 기록과학대학원 여가경영학과 소속이었다가 지금은 교양학부 소속이다. 고려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김정운은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문화심리학을 공부하며 교수로 재직했다. 무려 13년 동안 독일에서 살았다.

독일에 살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외로움”이라고 했다. 돈이 없는 궁핍함은 아르바이트로 극복 가능했지만 사무치게 몰려드는 외로움은 주체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찾아갔던 곳이 음악감상실이었다. 자기와 비슷한 인간들이 몇몇 있는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등을 들으며 외로움을 달랬다. 지금도 대학 강의나 방송할 때 입는 옷과 헤어스타일이 슈베르트를 본뜬 것도 그 당시의 경험과 추억 때문이다. 

김정운은 문화심리학자답게 문화ㆍ예술ㆍ여가 등 광범위한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풀어놓는다. 여러 차례 그의 강의를 들어본 기자는 쉽고 재미있는 강의였음을 기억한다. 그는 “신지식을 엔터테인먼트화해서 전달하는 데 관심이 많다”고 말한다. 새로운 지식을 재미있게 전달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얘기다. 자신을 한마디로 ‘지식에듀테이너’라고 규정한다. 얼마 전 끝난 tvN 시사풍자 프로그램 ‘시사콘서트 열광’과 요즘 뜨고 있는 KBS ‘명작스캔들’ MC를 맡은 것도 그런 일을 하기 위함이다. 독일 유학 중 방송에서 지식을 재미있게 보급하는 사람들을 인상 깊게 보면서 귀국하면 그런 일을 하려고 마음먹었다.

“언제까지 지식인이 좌파나 우파로 나뉘어 이데올로기적인 것으로 싸울 것인가. 이런 걸로 사회적 담론이 만들어지는 시대는 지났다.”

김정운은 “좌우 이데올로기만 있는 게 아니다. 앞파, 뒤파, 속파, 겉파, 위파, 아래파도 있다”면서 “내 편, 네 편을 갈라서 서로 분노를 표출하는 게 지식인의 역할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정운은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과 시각에 대한 물꼬를 터주는 역할을 해주고 싶다고 말한다. 똑같은 사건일지라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그는 “요즘 TV 예능 프로그램은 볼 때는 재미있지만 보고 나면 씁쓸할 때도 많다”면서 “아이돌 가수가 나와서 연애하는 이야기에 왜 내가 귀를 기울여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우리 사회의 갖가지 현상을 색다른 시각으로 해석하는 것뿐만 아니라 문화와 예술을 다양한 시선으로 풀어내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가령 ‘명작스캔들’에서 김정운은 예술에 대해 누구나 자신의 느낌을 말하는 것임을 알게 해준다. 전문가들만이 아는 용어를 사용해 어렵게 말하는 게 아니라 일반 대중의 시선에서 말한다. 미술ㆍ음악 등 명작을 유쾌한 수다로 풀어낸다. 공동 MC인 김정운과 조영남은 때로는 무례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파격적이다. 엄숙함과 무거움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경쾌하고 발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지식과 유희를 겸한 토커라고 할 수 있다. 접근하는 방식도 멘델스존의 음악은 누나가 대필해줬다는 등 극히 사소한 내용에서 출발한다. 그만큼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얘기다. 김정운의 이런 접근법은 예술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김정운은 베스트셀러 작가 겸 인기 강사 그리고 스타다

김정운은 ‘노는 만큼 성공한다’ ‘휴테크성공학’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등 많은 책을 썼다. 방학이 되면 출판사에서 김정운 잡기가 펼쳐질 정도로 흥행력을 갖췄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는 출간된 지 1년이 훨씬 넘었지만 여전히 베스트셀러다. 책에는 의무와 책임만 있고 재미는 잃어버린, 이 시대 중년 남자들에게 그 이유를 알려주고 처방전을 내리고 있다.

그는 ‘통속적인 것’과 ‘교양적인 것’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글쓰기 방식으로 자신의 견해를 풀어간다. 자신의 주변 친구들과 지질하게 어울리던 모습을 지나치게 가감 없이 보여줘 그대로 읽으면 막장드라마같이 자극적인 곳도 있다. 김정운은 “친구 팔아 쓴 책”이라고 농담을 했다. 하지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솔직할 때 개선책도 정확해지는 법이다.

김 교수는 책에서 대한민국 중년 남성이 불안과 고뇌에 휩싸이는 것은 재미를 잃어버린 생활 때문임을 강조한다. 재미있게 놀면 불안해지는 엄숙주의와 진지함 과잉주의를 내다 버리라고 한다. 그러지 않는 한 일상에서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가 없다. 그래서 한국 남자들은 자신을 한계 상황까지 몰고 가는 마라톤에 빠지거나 폭탄주를 마시고 자신의 위장이라도 뒤집어야 직성이 풀린다.

김 교수는 경쟁의 룰은 어느 단계까지만 적용되고 그다음부터는 잘 놀고 재미있는 사람이 이기게 돼 있다고 주장한다. 직책이나 직위가 없어져도 삶이 재미있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운은 어렵고 딱딱하고 지루한 이론으로 일관하면서 근엄하게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감하게 하고 위로받게 한다. 그래서 가랑비에 속옷 젖듯이 받아들이게 된다. 무엇보다 재미가 좋다는 게 큰 장점이다.

그래서인지 기업 강사와 방송인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의 스케줄표에는 올해 기업 강의 일정이 빼곡하다. 강의 요청을 거절하기 위해 강사료를 비싸게 불러도 소용없다.

김정운은 최근 KBS ‘승승장구’에 출연해 경쟁 프로그램인 SBS ‘강심장’보다 돋보였다는 반응을 얻었다. 연예인 못지않은 예능감을 지녔다는 평가다. 부부간의 소통 문제에 대한 김정운의 강의에 많은 사람이 공감을 표시했다.

접촉 결핍의 시대에 부부가 오래 살기 위해서는 많이 만지라고 조언하고, 정서 공유와 입장 바꿔보기 등을 강조했다. 그는 같은 말을 해도 어떤 사람은 재미있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말하는 것은 수도관을 만들어 물을 공급하는 작업이다. 수도관을 만드는 작업이 95%라면 그 속을 흐르는 물은 5%다. 그러니까 말의 내용은 5%에 불과하다. 그 이전에 수도관 만드는 커뮤니케이션 작업을 잘해놓는다. 그래야 내가 한 말이 듣는 사람의 마음속까지 파이프 라인을 타고 흘러들어 간다.”



▶김정운은 노는 것과 재미 예찬론자다

김정운의 재미 추구는 끝이 없다. 운동권이 대세였던 그의 대학 재학 시절, 남들은 모두 자유니, 민주니, 통일을 외칠 때 자신은 개인, 욕망, 행복, 재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당시 대학가에서는 이단으로 통했지만 행복과 재미가 훨씬 더 상위 가치임을 깨닫고 있었다.

김정운은 우리나라가 더는 선진국이 되기 힘든 건 잘 놀지 못해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지구를 지키는 ‘독수리 5형제’처럼 살 것을 강요당하고, 남의 말만 하고 살다 보니 행복함을 느끼지 못한다. 재미가 없으면 일의 능률과 창의성이 계발되기 힘든 건 당연하다.

김정운은 그런 차원에서 재미있는 삶을 강조하며 재미의 본질도 쉽게 설명한다. 관점이 자주 전환될 때 재미는 극대화된다고 한다. 인생이 재미없으면 원근법으로 보라는 말이 그런 뜻이다.

“ ‘재미(Fun)’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19세기 말이다. 그 본질은 구경거리 또는 관점이다. 그러니까 재미가 있으려면 구경할 거리가 많아야 하고 관점 전환이 자주 이뤄져야 한다. 19세기 말 유럽에서 노천카페와 철도여행이 늘어났으며 영화가 발명된 것은 모두 재미의 본질인 ‘구경’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미니홈피나 블로그가 유행하는 것도 재미 추구의 일환이다. 훔쳐보기와 드러내기라는 마음의 관점 전환으로 파악한다. 개그나 유머도 결국 관점 진행 방향을 바꿈으로써 재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재미의 본질을 알게 되면 일상생활을 더욱 재미있게 꾸밀 수 있고, 이는 행복과 연결된다는 게 김정운의 지론이다. 재미있고 기분이 좋아지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김정운은 5성급 호텔의 하얀 침대 시트에서 기분이 좋았음을 상기시키며 집 침대를 5성급 호텔처럼 하얀 시트로 바꾸었다. 김정운은 “누우면 기분이 끝내준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사소한 일이라도 자신만의 일상 의식, 즉 리추얼(Ritual)을 만들라고 조언한다. 노천카페에 혼자 앉아 천천히 커피를 마셔 보고, 뒷산 약수터를 아들과 함께 오르며, 석양에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하러 나가 보라고 한다. 이렇게 조그만 일에도 감탄하고, 울고 싶으면 우는 등 감정 표현에도 솔직해지는 게 행복해지는 첩경이다. 김정운은 사람들이 죽을 때 더 많은 돈을 못 벌었기 때문이 아니라 더 재미있게 못 산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이제부터라도 재미를 챙기는 일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서병기 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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