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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들이 그린 자화상>산토끼 키워 돌려보낸…화가의 손, 꿈이 되다
임동식

벌써 오래된 이야기이다. 시골마을에서 지내고 싶던 나는 충남 공주의 원골마을에 입주했다.

그 첫해 가을, 이웃마을이 고향인 한 후배가 뜻밖의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 라면상자에 담아온 아기 산토끼 두 마리. 어찌나 작았던지 한손에 두 마리를 쥐어도 손이 남을 정도였다. 어미 몸에서 갓 나온 듯했다.

아기 토끼는 후배가 산소를 벌초하던 중 풀 숲에서 발견한 것이었다. 사람과 접촉하면 어미토끼가 다시 돌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후배는 “우유를 줘도 안 먹어요! 아마 죽을지도 몰라요!”라고 말했다.

토끼들이 살지 못할 거라는 건 동네 분들도 마찬가지였다. 지나치게 어린 데다, 전에 가끔 산토끼를 잡아 길러보려 했지만 어찌나 고집이 센지 절대 먹지 않아 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비단의 화려한 색채와 윤기가 생생하게 표현된 임동식의 신작 ‘비단장사 왕서방-소매장’. 유화.

과연 토끼는 우유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안타까운 고민 중 그들이 따뜻한 어미 품을 그리워할 것 같아 침대에 누워 나의 가슴 심장부근, 속옷 밑에 올려놓고 따듯하게 감싸주었다. 텔레파시라는 걸 할 줄도, 해본 적도 없지만 “살아라! 살아야 한다!”를 마음 속으로 되뇌며 계속 이야기를 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녀석들의 아주 작은 혀가 나의 피부를 핥는 느낌이 들어 얼른 둘을 한 손에 쥐고 새끼손가락으로 우유를 찍은 다음 손가락을 입에 대니 다행히 먹기 시작했다.

그 후 아기산토끼 두 마리는 내 방에서 뛰어놀며 건강히 자랐다. 한 녀석은 6개월 후 나의 과보호 실수로 죽었고, 남은 녀석은 8개월여를 살다가 산으로 갔다. 그들이 어릴 때 하루 일광욕 세 번을 어김없이 시켰고, 겨울에도 양지녘에 남아있는 풀을 구해 먹였다. 그들을 키우며 겪었던 일화며 그들의 재롱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하랴!

작가 임동식이 직접 기르던 어린 산토끼에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대입시킨 자화상. ‘소년과 그 50년 후의 손’이란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듯 작가의 얼굴은 소년의 모습으로, 산토끼를 쥐고 있는 손은 50년 후 중년의 손으로 표현돼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무언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성정만은 변함 없음을 느낄 수 있다.

정이 들 대로 든 한 녀석이 죽었을 때 나는 보름 이상 울었다. 더구나 남은 녀석의 죽은 토끼를 그리워하는 모습은 애처롭고, 마음이 아려 못 볼 지경이었다. 토끼들은 나이가 들 대로 든 나를 다시 유소년이 되게 했다. 밤에는 온 방을 뛰어다니다 내가 먼저 왔다는 듯 침대 위 내 가슴 위로 올라 오줌을 살짝 누던 모습까지 그립다.

생각해 보니 나는 어릴 때도 무언가를 심하게 그리워하는 편이었다. 8개월간 온갖 정을 준 산토끼를 잊지 못하는 내 모습은 그리움으로 가득 차곤 했던 나의 어릴 적 모습과 맞닿아 있다.
 

< 글, 그림=임동식(화가) >

이영란 기자/yrlee@heraldcorp.com



작가 임동식(66)은 홍익대 미대와 독일 함부르크미술대학을 졸업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미술 실현의 장(場)을 실내에서 야외로 전환했던 임동식은 국내 최초의 야외미술제인 ‘금강현대미술제’를 만들었고, 이후 30년간 자연미술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오랜 야외미술 경험을 바탕으로 2000년대 초부터 회화작업에 몰두한 작가는 차지고 깊이있는 회화를 선보이고 있다. 

산에서 버섯, 칡을 채집하는 동갑내기 농부의 삶을 담은 ‘친구가 권유한 풍경’ 연작을 제작했던 작가는 13일부터 갖는 개인전(이화익갤러리)에는 ‘비단장사 왕서방’이라는 색다른 주제의 작품을 발표한다. 동양 복식의 기본인 화려한 비단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신작은 날로 자취를 감추는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상기시키며,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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