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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속 헤아리고 긁어주고…남모를 고민들 해결사…수사도 이젠 고객만족
전국최초 8명 전원 여경…서울 중랑경찰서 경제3팀
수사신뢰도 호평에 올해 시범운영

6~8년차 베테랑 섬세함이 큰무기

생계범죄부터 상담까지 ‘팔방미인’

기싸움 보다 법적근거로 조목조목

탄력근무제 도입 새바람 실험도

“대외적 편견·시샘 능력으로 극복”




“노트북을 도난당한 경위를 파악하고 나면 제 노트북을 찾을 수 있나요?”

“절도범을 검거하고 형사처벌을 어떻게 할지 현행법과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합니다. 하지만 잃어버린 노트북에 대해 변제까지 해줄 수는 없어요. 이런 부분은 따로 민사재판을 통해 청구하셔야 합니다.”

서울 중랑경찰서 1층 오른쪽 코너에 위치한 경제3팀 사무실에서 노트북을 도난당한 남성과 여수사관의 상담이 한창이다. 경찰서라면 매서운 수사관과 억울함에 북받친 피해자, 마지막 궁지에 몰린 피의자 등이 서로 얽혀 뭔가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가 예상되지만, 이곳은 좀 다르다. 차분하게 설명하는 수사관의 모습에 금쪽같은 노트북을 도난당한 남성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돌아간다.

중랑서 경제3팀은 다른 경찰서 수사팀과 확연히 다른 게 있다. 팀장을 포함한 수사팀 8명이 전원 여경이라는 점이다. 여경으로만 하나의 수사팀을 구성한 것은 전국 경찰 최초로, 중랑서 경제3팀은 지난 2일 출범식을 하고 정식 업무를 시작했다. 중랑서가 위치한 중랑구 지역은 대표적인 서민 거주지역으로, 소규모의 생계형 범죄가 잦은 곳이다. 

강남 사모님들의 애를 태웠던 ‘귀족계’의 수십억대 사기사건이나 회사 경영진의 횡령 같은 사건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동네 주민 간 수백만원을 두고 벌어지는 고소ㆍ고발이나 소액의 금품 도난에 대한 피해 신고가 줄을 잇는다. 소액이라 하더라도 피땀으로 일군 재산을 잃을 위기에 처한 서민들은 당황한 심정에 중언부언하며 진술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다. 

빚 받을 기회를 번번이 놓치고 이웃과 목소리를 높인 서민들도 답답한 마음에 관아(?)를 찾긴 하지만, 내심 이웃 벌주고 싶은 마음보다 빚 받고 다시 사촌지간처럼 지내고 싶은 바람이 앞선다. ‘세게 나가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심정에 경찰서까지 와 체면상 먼저 말은 못하지만 합의만 제대로 되면 다시 굳은 마음을 풀어낼 용의도 있다. 이럴 때 조목조목 피해 사실을 정리해주고, 속마음을 짚어내며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데에 여수사관들 특유의 섬세한 감각이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여수사관들이 수사를 담당한 사건이 지역 주민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자, 김녹범 신임 서장은 아예 지난달 각 수사팀에서 여경들을 뽑아 팀을 만들어 여경 경제팀을 시범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황경희 팀장은 1986년부터 경찰 조직에 몸담으며 수사 관행의 변화를 몸소 체험해왔고 박애화 수사관, 전윤숙 수사관 등 7명의 팀원도 경력 6~8년차로 한창 의욕이 넘칠 베테랑들이다.

중랑서 경제3팀의 모토는 ‘고객 만족’이다. 억울한 사연을 안고 경찰서를 찾는 이들을 단순히 피해자로 보는 것이 아닌, 치안 서비스를 요구하는 고객으로 보고 행동한다. 황 팀장은 “기업이 새로운 가치를 열지 못하면 사라지듯, 수사도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며 수사의 새 관행을 열겠다는 포부를 펼쳤다.

“국민 수준이 높아지면서 기업이나 다른 서비스 분야는 고객 만족이 핵심 가치가 됐지만 관료사회는 가장 늦게 변화해온 게 사실입니다. 국민이 경찰의 수사력을 절실히 필요로 해서 오니까 경찰 입장에서 아쉬운 것이 없다는 인식이 있었다는 점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관행에 고개를 돌렸던 주민들이 ‘친경찰’ 쪽으로 돌아오실 수 있도록 고객 만족의 치안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목표입니다.”

여경들로만 구성된 중랑경찰서 경제3팀의 팀장인 황경희(앞쪽부터)경감, 김정희 경위, 지상은 경장, 권미정 순경, 박은정 경사, 전윤숙 경위, 박애화 경장, 김희경 경장.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고객 만족을 실천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수사관들의 실력이다. 경제3팀은 몽니를 부리는 피의자나 요구 사항이 불분명한 악성 민원인을 만나도 고성이나 우악스러운 행동으로 상대방과 기싸움을 벌이지 않는다. 대신 법을 근거로 조목조목 따져 든다. 틈을 보이지 않는 수사력이 상대방에게 허점을 내주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파악했기 때문이다. 3팀 소속 수사관들은 복장도 모두 정장 내지는 세미정장을 입는다. 피해 사실을 털어놓으려고 오는 민원인들에게 프로다운 모습으로 신뢰감을 주기 위해서다. 조사를 받는 피해자들이 편하게 물건을 놓거나 필요한 메모를 바로 할 수 있도록 테이블을 마련하는 배려도 보였다.

여경 수사팀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안팎의 시샘이나 편견 섞인 시선도 느껴진다. 도주한 피의자를 검거하는 일 등 남성 수사관의 역할도 중요한데 여경만 모여서 잘 처리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와 대외적으로 홍보된 만큼의 성과가 있겠느냐는 의심도 슬쩍 들려온다. 무엇보다 전국 경찰 최초라는 타이틀은 시샘이나 고충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수반한다. 황 팀장은 “도주하거나 잠적한 피의자를 검거하는 일 등에는 다른 팀에서 남성 수사관의 손을 빌리고, 다른 팀이 맡은 사건 중 여경에게 조사받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3팀 인력을 잠시 내주기로 했다”며 ‘품앗이’ 계획을 밝혔다. 경제3팀 사무실 출입문 안쪽에 잠금장치를 추가로 달아 사무실 안에서 문을 열어줘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구조를 손보기도 했다.

경제3팀은 팀원 구성에서뿐만 아니라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는 분야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모색했다. 팀원 8명 중 기혼자가 5명이나 되는 점을 고려해 탄력근무제를 시행하기로 한 것이다. 경찰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하는 게 기본이지만 경제3팀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근무하는 쪽을 선택할 수 있다. 다방면으로 새로운 시도를 감행한 중랑서 경제3팀이 어떤 성과로 경찰 조직에 새 바람을 불어넣을지, 3팀의 고객인 국민의 기대 어린 관심이 집중된다.

도현정 기자/ kate01@heraldcorp.com



‘유리천장’에 갇힌 엄친딸서

‘공정경찰’ 아이콘으로 자리매김

편견 뿌리친 도전기 ‘女警역사 65년’


한국의 여경은 1946년 미군정청 경무부 공안국에 여자경찰과가 생기며 처음 등장했다. 당시 80명의 여경은 고교 이상의 학력에 단정한 용모를 갖춘 원조 ‘엄친딸’ 격인 인재들로, 여경이 ‘떴다’ 하면 구경꾼들이 몰려들 정도로 인기를 구가했다. 대중적 인기에 비해 여경에게 주어진 업무는 극히 제한적인 분야였고, 승진하면 할수록 내근으로만 배치되는 구조 때문에 어느 선 이상 올라가기 어려워 많은 여경이 ‘유리천장’을 맛봐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여경들의 도전이 계속되면서 경비, 수사, 정보 등 경찰의 모든 직능에 여경이 진출할 수 있게 됐고, 전체 10만 경찰 중 6800여명에 달하는 여경이 경위 이상 간부만 917명을 차지하게 됐다. 금녀(禁女)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해양경찰도 86년부터 여경이 발을 딛기 시작해 전체 해경 7368명 중 459명을 차지할 정도가 됐다.

특히 수사부서에서는 여경에 대한 신뢰가 커 경찰은 올해부터 일선 경찰서 경제팀의 여경 비율을 30%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여경 비율 권장 기준은 50%까지 늘어난다. 수사부서에서 여경이 각광받는 것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수사 공정성을 높이는 데 효과를 보인 것으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경찰이 수사, 형사, 교통사고 조사 등 경찰관을 접해본 국민 600명과 경찰관을 접해보지 않은 국민 500명을 대상으로 공정성 수준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여경에게 조사받았던 국민 85.3%가 공정하다고 응답했다. 

남성 경찰에게 조사받았던 국민이 공정하다고 응답한 비율 63.9%보다 21.4%포인트나 높은 수치다. 조사부서에 여경을 배치하는 것이 경찰의 공정성 향상에 기여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서도 전체 응답자의 63.6%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공정경찰’의 상징인 여경은 소통을 중시하는 시대의 흐름과 맞물려 새로운 경찰 행정의 모델을 안착시키는 데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도현정 기자/ kate0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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