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 사태가 원전의 ‘도미노 폭발’로 인한 노심용해 우려가 공식 제기되면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15일 2,4호기 폭발에 이어 16일에는 1~6호기 모두가 긴급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대지진 발생 닷새째를 맞은 16일 현재까지 후쿠시마 제1원전의 원자로 6기 중 1~4호기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났고 5~6호기에서도 온도상승이 감지됐다. 4호기의 경우 16일 이틀째 폭발과 화재가 이어진 데다 8m짜리 구멍까지 뚫린 것으로 확인됐다. 제1원전에서 남쪽으로 11.5㎞ 떨어진 제2원전에서도 3호기를 제외한 1,2,4 호기 냉각시스템에 이상이 발생한 바 있다.
특히 제1원전 1,2호기에서 노심용해로 핵연료가 파손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도쿄전력 점검 결과, 폭발로 원자로 건물 지방이 날아간 제1원전 1호기의 연료봉이 70% 정도 파손된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폭발로 원자로 격납용기 하단부가 손상된 2호기의 핵연료는 30%가 파손된 것으로 추정됐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15일 2호기의 노심부위가 손생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히고 핵연료 손상량을 5% 이내로 잡았다.
14일 수소폭발이 발생한 3호기는 격납용기 내 방사능 물질 관측 장치가 고장 나 핵연료의 파손 정도를 알 수도 없는 상황이다. 당국은 사고 원전 내 냉각수 투입을 위해 총력을 동원하고 있으나 내부 방사선 수치가 높아 접근이 어려워지면서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도쿄전력은 당초 헬기를 이용해 냉각수를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이를 취소하고 대신 소방차 등 다른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는 도쿄전력 직원 800여 명 및 자위대 대원 200여 명이 현장에 남아 사태 수습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핵연료를 감싸고 있는 금속에 균열이 생기면서 방사능 물질이 대량 누출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시간 당 기준의 400배에 달하는 방사선이 노출됐다. 이는 일반인이 1년 동안 노출되는 방사선량으로, 전문가들은 이 정도 방사선에 10시간 이상 노출될 경우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원전에서 남서쪽으로 270㎞ 떨어진 수도 도쿄(東京)에서도 평소의 9배에 달하는 방사선이 검출됐다.
사태가 악화되자 프랑스 원자력안전위원회(ASN)는 이날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를 국제원자력사고등급(INES) 기준으로 체르노빌 원전 사고 당시인 최고등급(7등급)보다 한 단계 아래인 6등급으로 조정했다. ASN은 지난 14일 이 사고를 5등급 또는 6등급으로 분류했지만 상황이 계속 나빠지자 등급을 상향조정했다. 이번 사고가 6등급으로 분류된 것은 5등급이었던 197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스리마일 원전사고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인들은 극도의 공포감을 느끼며 불안에 떨고 있다. 절대적으로 안전을 자신하던 원전에서 지난 12일 폭발사고가 발생한 후 사고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어나자 일본 국민은 ‘안전신화가 무너졌다’며 충격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사고처리에 대한 ‘최후의 보루’로 주목을 받았던 자위대 내부에서도 “원전시설의 안전화 임무에 대해서는 노하우가 없다”며 곤혹스러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위성의 한 고위 관계자는 “안전하다고 해 믿고 작업을 했는데 사고가 일어났다”며 정부의 안전불감증을 비난했다.
원전 사태가 악화일로를 걷자 정부와 발전사가 모두 참여하는 통합대책본부를 구성하고 총력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와 관련, 일본 운수성은 폭발을 일으킨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반경 30㎞ 지역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했다고 16일 밝혔다. 국제사회의 전문가들도 속속 현지로 파견되고 있다. AEA가 전문가팀 파견을 결정했고 미국이 원자력규제위원회 소속 전문가 34명을 추가 파견하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1986년 체르노빌 폭발사고 결과를 다뤘던 원자력 전문가팀을 일본에 파견하겠다고 제안했다.
한국 정부는 일본이 원자로 냉각에 필수적인 붕소 수십t을 긴급 요청함에 따라 재고가 모자란다고 해도 시급히 붕소를 지원할 계획이다.
유지현 기자/prodig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