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言)이 현상(現象)과 만나면 사실에 가까워진다. 재앙에 대한 예언에 현상이 더해지면 사람들은 불안에 휩싸인다. 2004년 인도네시아 쓰나미, 2010년 아이티ㆍ칠레 대지진, 2011년 뉴질랜드에 이어 일본 대지진을 겪은 세계인들이 우려하는 이유다.
2012년 세계가 멸망한다는 종말론이 지난 한 해 큰 관심을 받았다. 러시아 ‘화성소년 보리스카가 2008ㆍ2009년 지구의 한 대륙에 큰 재난이, 2011년에는 한 대륙에 세 차례 재난이 닥친다고 예언한 일도 있다. 오는 19일 달과 지구의 거리가 가장 가까워진다는 슈퍼문 현상을 앞두고도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1983년 뉴잉글랜드 허리케인, 1984년 호주 다윈의 사이클론, 2004년 인도네시아 쓰니미 현상이 슈퍼문 출연을 전후로 발생해서다. 일본 도카이 지역에서 규모 8 이상의 강진이 100~150년 주기로 발생한다는 도카이강진설은 규모 7.0 이상의 강진이 이어질 수 있다는 일본 기상청의 전망이 더해져 우려를 낳고 있다.
▶‘불의 고리’ 환태평양지진대 주시하라=최근 지구촌을 강타한 지진은 공통점이 있다. 모두 환태평양지진대에서 발생한 것.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지난 100년간 발생한 지진 가운데 상위 20위에 드는 규모의 지진 중 19건이 모두 이곳에서 발생했다.
기상청 이현 지진관리관은 “태평양판 등 10여개의 판이 매년 수㎝ 정도의 속도로 맨틀 위를 이동하면서 서로 부딪치거나 밀고 때로는 포개지면서 지각 내부에 힘을 축적해 지진을 발생시킨다”고 설명했다.
일본 혼슈 지진은 동쪽에 있는 태평양지각판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발생했다. 일본 열도는 서쪽의 유라시아판, 동쪽의 태평양판, 북쪽의 북미판, 남쪽의 필리핀판 등 4개의 지각판이 만나는 위치에 있다. 이번에 지진이 발생한 지점은 태평양판과 북미판이 만나는 경계였다. 태평양판은 한 해에 약 10㎝씩 북미판 아래로 밀고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충격 에너지가 발생해 북미판 내부와 마찰하며 단층이 생겼고, 단층의 단면이 어긋나면서 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2004년 발생한 인도네시아 지진은 반대로 서쪽 유라시아판이 동쪽 태평양판을 밀었다. 일본 지진과는 반대 방향으로 작용했지만 지각판이 부딪혀서 그 여파로 한쪽 지각판 안쪽 단층이 어긋나며 지진이 일어난 점은 같다.
▶빙하가 녹았다, 땅이 일어났다=온난화 이후 빙하 감소가 지진 증가의 원인이라는 연구결과도 불안감을 더한다. 빙하 감소가 북극의 정수리 온도를 높여 중위도권 한파를 몰고오더니 지진의 원인으로도 주목받는 것이다.
2004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지질조사국(USGS)의 과학자들은 남부 알래스카의 빙하 감소가 지진 발생 증가로 이어진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빙하가 녹으면서 지각에 작용하는 하중이 줄며 하부의 응력을 해소하기 위한 지진 발생이 증가되는 것. 빙하가 지진 발생을 촉진하고 지각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 대규모 지진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NASA 고다드우주연구소의 소버 연구원은 “1만년 전 빙하기 끝 무렵에 스칸디나비아에서는 큰 지진이 발생했으며, 캐나다에서도 얼음층이 녹으면서 지진 발생이 증가했다”고 연구논문을 통해 밝혔다.
2006년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은 그린란드 빙하의 이동 속도가 빨라지고 이때의 충격으로 지진 발생 빈도가 4년 전인 2002년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났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잇따른 자연재해…한반도는?=한반도가 최근 태평양 연안 국가들을 휩쓴 대지진의 위험에서는 한 발짝 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 동해안이 한반도와 1000㎞ 이상 떨어져 있고, 불의 고리 지역에서 쓰나미가 발생해도 일본 열도에 막혀 한반도까지 몰려오긴 어려워서다. 하지만 21세기형 새로 쓰는 재앙의 법칙은 어느 지역도 안심할 수 없게 만든다.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의 에릭 필딩 박사는 센다이 지진은 진앙에서 동서 양쪽으로 500km 지점의 해저판까지 영향을 미쳤다면서 또 다른 지진들이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번 난 곳엔 당분간 안 난다는 통설을 깨는 것이다. 태평양판 해저에 심각한 변화가 있다면 다른 판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라시아판 끝자락에서 그리 멀지 않다.
박수진 기자/sjp10@heraldcorp.com